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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day Diary 2024. 3. 9. 01:02

    이 회사에 몸 담은 지도 8년 차가 되었다.
    입사 초반, 나는 좀 엉망이었다.
    준비는 되지 않았는데, 업무 역량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경험 모두 어이없을 만큼 보잘것없는데.. 자의식으로 뭉친 데다 고집이 셌다.
    이런 직원의 경우 보통, 회사에서는 골칫덩이, 문제아로 본다.
    내가 딱 그랬다.
    사실, 그때 내가 설정한 방향은 맞긴 했는데.. 그 과정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성과가 없고 역량이 부족한 직원의 발언권은 조직 내에서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고집이 셌으니, 나를 뽑아준 상무님과도 마찰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조인한 지 9개월 만에 퇴사하고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Country head가 공석이 되었고 그 자리를 채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Asia VP가 한국 헤드를 임시로 겸직했다.
    당시 Asia VP는 대만계 미국인. 외모는 아시안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뼛속까지 미국 사람이었다. 영어까지도.
    일본 지사에 베이스를 두고 있던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을 졸업하였고 화려한 언변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과감한 행동력과 추진력을 가진 스타일의 천재형 인재였다.

    그와의 업무는 내 초반의 기대와는 다르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미 전임 한국 헤드로부터 나에 대해 좋지 않은 평판을 접한 그는 일단 선입견을 가진 채로 나를 만났다.
    거기에 더해.. 당시 나의 영어 능력은 아직 형편이 없어서, 그의 빠른 캘리포니아 영어 앞에 주눅이 들었고, 그러니 더욱 안 들렸고, ‘sorry?’라는 내 말에도 그의 빠른 영어는 그 속도가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평판이 좋지 않고, 업무 결과도 그다지 대단할 것 없고, 커뮤니캐이션도 잘 안 되는 연구원 출신의 뉴비가, 자기 주관과 고집은 세니.. 내가 보스라도 당시의 나를 싫어하지 않기는 어려웠을 거다.
    갈수록 그의 나를 향한 불편한 모습과 기색은 드러났고 어떤 날은 (미국인답지 않게) 내 앞에서 짜증을 내며 으르렁거리는 (정말 그런 것 같이 보였다) 날까지 있었다.
    거쳐 거쳐 들리는 말이, 그가 상하이 출장 중, 아시아 각국 해드들과 미팅에서 나를 평가하며 fuxx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썼다는 말도 들려왔다.
    내 커리어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 목표와 방법을 고수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철저히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고객 확대 전략이었고 그건 결과까지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 당시 나는 하루 평균 5시간을 채 자지 않았다. 주말도 쉰 날이 거의 없었다. 기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결과이다. 드라마틱한 결과만이, 내가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었고, 비참하게 물러서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시간들을 대체 어떤 정신으로 버텼는지.. 지금 돌아보면 신기할 정도.
    그 사이, 새로운 한국 헤드가 채용되었고, VP는 이젠 나와 직접적으로 일할 것은 사라졌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나.. 내가 계획하고 밀어붙혔던, 그 드라마틱한 결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매출은 매년 드라마틱하게 성장했고 신규 고객사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으며 한국 지사 최초, 아시아 전체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신규 비즈니스들이 계속 새롭게 시작되었다.
    모두 내 두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었다.
    인사평가는 매년 최상을 찍기 시작했고 동료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그사이 영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매일 업무의 절반 이상이 영어이고 그 짓을 밤낮으로 몇 년을 했으니..
    상황이 이러니 사업부 내 reputation도 당연하게 매우 높아졌다.
    그 사이, 그 VP가 다른 자리에서 나에 대해 하는 발언들이 간간히 내 귀에 들어왔다.
    ‘걔는 내가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본 사람 중, 가장 단기간 내에 영어가 획기적으로 는 친구야.’
    ‘일은 걔처럼 해야지. 걔야말로 진정한 세일즈맨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매년 걔한테 어려운 목표를 줬거든? 도달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라고.. 근데 걔는 매년 그걸 달성해. 그다음 해애도.. 그 그다음 해에도..’
    반전이었다.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던 그가, 이제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칭찬을 입에 달고 산다.
    어느 날 한국 헤드가 나에게 메일을 하나 보여 주었다. 그 메일에는..
    ‘나는 그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가 성취한 것들을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 그에게 필요한 보상을 좀 해주고 싶은데.. 우리가 그를 위해 무엇을 제공해 주면 좋을까?’라는 그 VP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 회사 조인 이후 가장 소름 돋게 기쁜 날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년이 지났다.
    나는 그 뒤로도 많은 성취를 쌓아갔고, 그렇게 꿈꾸던, region job을 얻어, 한국 담당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비록 한 가지 분야지만, AP지역을 담당하는 regional manager가 되었다.
    그 VP는 몇 몇의 고위직을 지내면서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제, 현재 나와 일을 하는 미국인 보스가 새로운 뉴스를 알려 주었다.
    그 VP가 나의 보스로 부임할 것이라고.
    순간, 두려움 반, 기대반의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는 완벽주의자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명석하며 부지런하고 마이크로매니징을 좋아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만만한 보스가 아닌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나에 대한 좋은 인상과 기억을 가지고 있고 과거 내가 일하던 방식과 결과를 좋아했다.
    부담과 기대가 교차한다.

    이것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또는 새로운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타이밍은 적절하진 않다. 조금 이르다.
    새로운 포지션을 맡은 지는 반년 정도 되었지만, 인수인계와 인계자에 대한 서포트와 일부 아직 들고 있는 한국 내 비즈니스의 워크로드와, 새 포지션에 대한 적응 시간 등으로 나는 아직, 새로운 포지션에서 이렇다 할 뚜렷한 성과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선은 걱정이 더 앞선다.
    그리고 바로 하루 뒤, 그로부터 1:1 미팅 인비테이션이 왔다. 날짜는 바로 다음 주 화요일.
    그답다. 빠르고 주저함이 없다. 나라면 자료 검토하고 숫자 검토한 후 서서히 접근할 텐데.. 그는 바로 파고든다.
    주말 동안 어쩌면 나는 자료를 준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얘기를 전개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위기이자 도전이고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다.
    새로 가중된 부담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인가.. 두둥. ㅠ

    모험을 즐기기에는 소심한 타입이지만,
    내가 이 회사 면접 볼 때 프레젠테이션 마지막에 했던 문장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보고.. 두근대는 마음을 설레임으로 바꿔본다.

    “A ship in a harbou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 John A. Shedd.

    해피엔딩이길..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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