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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역체계, 그리고 선택과 집중
    Oneday Diary 2022. 12. 17. 21:58

    11월 초.
    독일 출장 중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그것은, 처음이었다.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속출하는 감염자 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난 수년 동안
    여러 미팅에서 여러 디너에서, 일본, 캐나다, 싱가폴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그 무수한 감염의 위험을 견뎌내고 지금껏 무감염자라는 타이틀을 은근히 마음 속으로 자랑스럽게 달고 있었는데,
    막상 신속항원검사 키트의 빨간 두 줄을 받아 들자, 굉장히 억울한 기분에 빠졌다.

    역시 답은 마스크였다. 진짜로. 독일 출장이 지난 다른 모든 출장들과 달랐던 건 단 하나. 마스크였다.
    독일 출장은 Global Pharmaceutical Excipient 부문에서 가장 큰 전시회인 CPHI였고 그곳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거의 99% 이상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유럽은 이미 코로나 감염을 감기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고 그런 기조를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상황이 그러니, 그곳에 방문한 한국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아시아인들도 덩달아 마스크를 벗을 수 밖에 없었다. 미팅을 하러 왔는데 나만 껴고 대화하자니.. 이거 뭔가 결례인 것 같고.. 뭐 그런 상황인 게다.
    그렇게 이미 무수하게 감염되어 몸에 면역이 자리잡은 유럽인들과 다르게 우리 한국인들과 같은 마스크를 여전히 선호하는 국가로부터 온 사람들에게는 매우 높은 확률의 감염 파티가 되었다.
    첫날 부스에 도착한지 30분 만에 큰 결심하고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슈퍼 면역자다.. 나는 슈퍼 면역자다. 이럼에도 안걸리고 무사 귀국하면 나는 정말 슈퍼 면역자다..’를, 마치 주문처럼 수십번 중얼거렸다.

    3일차 밤부터 목이 칼칼해 진다.
    ‘아닐꺼야. 호텔방은 늘 건조하니, 늘 출장만 오면 걸리는 감기일 거야.’
    4일차에는 몸이 무겁다.
    ‘열이 심하게 나거나 하지는 않으니 감기일거야.’
    전시회 일정이 끝나고 다름슈타트 본사 내부 미팅에 참석한 5일차에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몸이 힘들다.
    그럼에도 코로나는 아닐거라는, 근거없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Ibuprofen을 연신 털어넣었다.

    미팅 후에 호텔 방에 돌아와 가지고 있던 마지막 2알의 Ibuprofen을 털어 넣고 그대로 침대에서 기절했다.
    그대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수 시간이 흐르고, 눈을 떠 보니 다음날 새벽 5시.
    12시간을 내리 잤던게다.
    열은 거의 내렸고 몸도 한결 낫다.
    ‘역시 그냥 감기였던 거야.’
    ‘다행이다 코로나는 아니었다.’

    그렇게 자위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외출해 약도 더 사고, 기념품도 좀 사고, 생선 요리 레스토랑에 들러 모처럼 밥다운 밥도 먹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했던 신속항원검사 키트에서, 검체 삽입 후 정확히 10초만에 선명한, 불타는 2줄을 발견하고 나는 즉시 서재에서 일주일간의 셀프 격리에 들어갔었다.
    지금은 완치된지 1개월.
    몸 안에 항체가 차고 넘치는 시기.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최근에 아내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그녀 역시 처음.

    어디서 걸렸을까.. 뇌피셜 역학조사를 해 본다.
    모처럼 떠났던 지난 주 통영 여행. 그 일정 중에 걸린게 분명한데.. 모든 일정은 다 일상적이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밀접 접촉은 거의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가는 상황이 없다…가..
    ‘아.. 거기구나.’
    통영에서의 마지막날 밤.
    떠나기 아쉬웠던 우리는 모처럼 코인노래방에 갔다.
    여행 중이라.. 좀 안일했던 게지.

    아내를 챙겨야 했고, 또한 나는 내 면역을 믿었고,
    나는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그녀를 간호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은 방에서 잠들고, 재택근무가 계속되니, 하루 24시간을 함께 같은 공간에서 있는 거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4일이 흘렀고,
    중간중간 약간의 미열이 있었고 피로감이 제법 있던고비들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감염되지 않았고 아내의 열은 다 내리고 콧물과 기운 없음과 같은 후유증만 남아 있다.

    감염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쉽게 감염되는데,
    나는 감염자와 함께 살아도 감염되지 않는다.

    내 몸의 면역체계는 이미 ‘경험’을 했고,
    그에 맞는 항체를 생산하는 데에 ‘집중’을 했고
    다시 같은 경험을 맞이했을 때, 내 몸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선택적 집중’을 다시 해서 내 몸을 빠르게 방어했다.

    어제 밤.
    서재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하다, 이 깨닳음같지 않은 깨닳음에 무릎을 치며 한동안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완벽할 수 없고, 천하무적일 수 없으니,
    그 모든 내 생의 경험들은 나에게 ’항체‘를 만들 기회를 주고,
    살면서 유사한 경험들을 또 마주할 때, 나는 그 기억들을 빨리 떠올리고
    그에 맞는 항체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방어한다.

    선택과 집중.
    그 간단한 명제를 모처럼 새롭게 깨닿는다.

    경험하라.
    기억하라.
    준비하라.
    집중하라.
    이겨내라.

    오늘의, 소중한 깨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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