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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들이 가지 않는 길
    Oneday Diary 2024. 1. 2. 12:24

    늘 남들이 가지 않은 길들을 걸어 왔었다.
    생물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도착한 대학원. 생명과학부에 우리 학부 출신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없었다. 외로운 학위 과정을 보내다 결국 석박통합의 꿈을 꺾고 3년만에 늦은 석사 졸업을 했다.
    그리고 이젠 직장인이 되어야 했다. 제약회사 연구소에 들어갔다.
    생물학 전공자들이 거의 희박한 의약품 제제연구 분야에서 거의 10년을 걸었다.
    화학과, 약학과 출신들이 대부분인 이 세계에서 생물학 전공자는 모임도 없고 선후배도 없었다. 그냥 혼자 발자국하나 없는 눈밭을 걸었다.
    그렇게 10년. 회사와 나의 많은 성장을 가져왔고 이 세계에서 더 많이 배울 건 없다고 결론 지었다.
    실험가운을 벗고 양복을 입기로 결심했다. 독일화학회사의 한국 내 Health Care 비즈니스 담당자로 조인했다.
    이 세계에도 역시, 순수 연구원 출신은 극히 드물고 생물학 전공자는 (아마도) 역사상 처음일 거고, 이런 이력을 가진 자가 비즈니스 담당자로 앉은 것도 처음일 거다.
    Technology based sales and marketing이, 내가 스스로에게 내 건 모토였다. 그것이 내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향이고 기업과 고객사와 개인이 모두 장기적 성장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지속적인 방향이라고 믿었다. 실험가운을 벗고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나는 논문을 읽었고 기술 자료들을 찾아서 홀로 공부를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공부가 더욱 중요하다 믿었다.
    여기에서도 역시 앞서 걸은 사람의 발자국은 찾기가 어려웠고 또 다시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에서 홀로 발자국을 만들며 남들이 걷지 않는 방향으로 걸었다. 목적지의 등대 불빛은 늘 아득했고 함께 할 모임이나 동료는 역시 없었다. 그저 아득한 저 불빛과 나 자신을 믿고 매일 매일 걸었다.
    그 많은 우여곡절과 잠 못 이루는 7년의 밤을 보냈고, 내가 조인하던 시점 대비 3배가 넘는 성장을 두 손으로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영어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의약품, 의공학제품 등 분야에서 자칭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입지도 탄탄하고, 모든 게 순탄하고 수월해졌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루틴함에 빠지면 이대로 평생 이 자리에서 먹고 살게 된다. 오늘의 아늑함과 익숙함은 미래의 독이라 나는 믿었다.


    새로운 포지션으로 지원했다.
    기존에는 한국 내 Pharmaceutical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medical device 제품 담당자였다면, 새로 옮기는 포지션은 의약품의 CDMO 비즈니스의 아시아태평양 담당자이다.
    도전하고 싶었다. 한국을 넘어서서 여러 나라의 비즈니스를 담당해 보고 싶었고, 또한 CDMO 비즈니스를 더욱 넓고 깊게 경험하고 싶었다.
    한국은 좁았고 세계를 대상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CDMO비즈니스는 종합 예술임을 이미 여러 한국 기업들을 통하여 경험했다. 화학적, 약학적, 공정적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영어 능력, 계약서 검토와 조율을 위한 지식과 능수능란한 협상 능력 그리고 여러 내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너무 어려워서 매력적이었다.
    지원했고, 승인을 받았다.
    여기에 하나 더.
    완제의약품의 CDMO 뿐 아니라, 원료의약품의 CMO 비즈니스 역시 지원했다.
    이 분야는 화학과 화학공학적 지식이 더 많이 필요하고 고객사의 pool역시 약간 상이하다.
    아직 논의 중이나 완료가 되면 이제 내 업무 분야는 C(D)MO로 집중된다.
    롱텀이며 기술과 네트웍이 더더욱 중요한 분야.
    우리 회사 한국 지사에서 누구도 해 보지 않은 포지션이고 여기에도 역시 내 앞에 발자국은 없다.
    방법은 역시 똑같다.
    보이지 않는 아득한 등대의 존재를 믿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한발 한발 걷는거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이드라인이 없고 지도도 없으며 동료도 없고 조언자도 없다. 가장 힘든 순간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다.
    한참을 걸었는데 예상했던 지점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을 때.
    눈보라가 극심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을 때.
    잠시 방향을 잃고 엉뚱한 길을 걷다가 그 사실을 깨닳았을 때.
    이럴 때 믿음이 흔들리고 공황에 빠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 본다.
    걸어온 먼 길을 본다.
    그리고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러면 다시 두려움이 걷히고 믿음이 생기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앞으로도 걸으면서 정말 많은 이런 순간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늘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간다.
    편한 길과 익숙한 길을 걷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이정도면 운명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동료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계획에 집중한다.
    큰 그림은 이미 그려두었고 오늘은 세부 계획을 그린다.
    그게, 올해의 지도이다.
    길은,
    내가 만든다.
    올해도 역시.

    Happy New Year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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